2024.05.20 (월)

  • 흐림속초15.3℃
  • 구름많음20.0℃
  • 흐림철원20.1℃
  • 흐림동두천20.2℃
  • 흐림파주19.7℃
  • 흐림대관령17.6℃
  • 흐림춘천20.9℃
  • 구름많음백령도14.8℃
  • 흐림북강릉15.7℃
  • 흐림강릉16.6℃
  • 흐림동해18.2℃
  • 흐림서울22.7℃
  • 흐림인천19.4℃
  • 구름많음원주21.9℃
  • 흐림울릉도17.0℃
  • 흐림수원22.4℃
  • 구름많음영월22.2℃
  • 구름많음충주23.2℃
  • 구름많음서산23.1℃
  • 흐림울진15.7℃
  • 구름조금청주23.6℃
  • 구름조금대전24.3℃
  • 구름많음추풍령23.7℃
  • 구름많음안동21.2℃
  • 구름많음상주25.6℃
  • 구름많음포항18.2℃
  • 구름조금군산23.3℃
  • 구름조금대구27.6℃
  • 맑음전주24.3℃
  • 구름많음울산25.7℃
  • 구름조금창원30.3℃
  • 구름조금광주26.4℃
  • 구름조금부산25.5℃
  • 맑음통영25.9℃
  • 구름많음목포23.9℃
  • 구름조금여수28.3℃
  • 구름조금흑산도23.7℃
  • 구름많음완도29.2℃
  • 구름많음고창
  • 맑음순천26.2℃
  • 구름많음홍성(예)23.5℃
  • 구름많음21.8℃
  • 흐림제주24.2℃
  • 흐림고산21.4℃
  • 구름많음성산25.6℃
  • 구름많음서귀포23.4℃
  • 구름조금진주28.6℃
  • 흐림강화18.1℃
  • 흐림양평22.1℃
  • 흐림이천23.8℃
  • 흐림인제17.0℃
  • 흐림홍천20.3℃
  • 구름많음태백23.5℃
  • 구름많음정선군24.3℃
  • 구름많음제천22.0℃
  • 구름많음보은23.6℃
  • 구름많음천안22.5℃
  • 구름조금보령23.7℃
  • 구름조금부여23.5℃
  • 구름많음금산23.9℃
  • 구름많음23.4℃
  • 구름조금부안23.9℃
  • 구름많음임실25.0℃
  • 구름많음정읍25.7℃
  • 구름조금남원26.2℃
  • 구름많음장수25.6℃
  • 흐림고창군24.9℃
  • 구름많음영광군26.3℃
  • 맑음김해시29.8℃
  • 구름조금순창군27.9℃
  • 맑음북창원29.8℃
  • 맑음양산시31.0℃
  • 구름조금보성군29.1℃
  • 구름조금강진군27.9℃
  • 구름조금장흥28.1℃
  • 구름조금해남26.2℃
  • 구름조금고흥28.2℃
  • 맑음의령군30.7℃
  • 맑음함양군28.1℃
  • 맑음광양시29.2℃
  • 구름조금진도군24.7℃
  • 구름많음봉화22.7℃
  • 구름많음영주22.5℃
  • 흐림문경21.6℃
  • 구름많음청송군22.8℃
  • 흐림영덕16.1℃
  • 구름조금의성23.3℃
  • 구름조금구미26.3℃
  • 맑음영천27.7℃
  • 구름많음경주시
  • 맑음거창27.4℃
  • 구름조금합천29.1℃
  • 구름조금밀양29.9℃
  • 구름조금산청29.6℃
  • 맑음거제28.4℃
  • 구름조금남해28.5℃
  • 맑음30.4℃
기상청 제공
그때 그 시절 ~ 변소에 꽃 핀 물치도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뉴스

그때 그 시절 ~ 변소에 꽃 핀 물치도

인천, 다시 걸어보고서​​​ 제 이름 찾은 작약도​

1.jpg


아직 국가지명위원회에서 방망이를 두드리지 않았으니 이 섬을 일단 그동안 불렀던 작약도(芍藥島)라고 부른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스즈키 하사오가 이 섬을 사들인 후 섬 모양이 작약꽃 봉우리 닮았다고 작약도란 이름으로 불렀다고 한다. 섬에 작약이 많아 이렇게 붙였다는 설도 있다.

 

 

 

 

이 섬은 이름만으로도 할 얘기가 많다. 이것만 갖고도 우리나라 근대기 역사의 한페이지는 족히 쓸 수 있다. 1871(고종8) 신미양요 당시 미 군함 5척이 이 섬에 정박했다. 이때 나무가 울창하다고 하여 우디아일랜드(woodyisland, 木島)’라고 자기네들끼리 정하고 지도에 표기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무슨 테마파크 같은 이름을 붙여 놓았다. 이에 앞서 1866년 병인양요 때는 부아제(boisse)’라고 불렀는데 조선에 온 프랑스 함대의 이름을 그냥 편하게 따서 불렀다.

 

2.jpg

 

일제의 쇠말뚝 이름 작약도는 이제 제 이름 물치도(勿淄島)가 되었다.

 

 

긴이 섬은 해방 후 여러번 손을 탔다. 일본인이 소유했기 때문에 적산(敵産)이었다. 1956년 서울 영등포에 있던 밀가루 회사 동립산업이 경기도로 부터 이 섬을 140만원에 사들였다.

 

 

 

 

이 과정에서 특혜 등 말이 많았다. 섬에 있는 5만 그루 소나무만 해도 1500만원의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헐값에 불하된 것은 정치적 배경이 작용했다는 등 여론이 들끓었다. 인천 앞바다의 작은 무인도 작약도가 세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3.jpg

 

60년대 중반 서울 한강에는 수영이 금지되었다. 서울 사람들이 작약도로 발길을 돌리면서 경인지역의 핫한 해양관광지로 급부상했다. 최불암, 신성일 등 톱스타들이 작약도에서의 사랑으로 결혼에 골인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막배를 고의로 놓쳐 섬에서 연인과 함께 방갈로에서 숙박하는데 성공했다는 옐로우성 전설들이 만들어졌던 시기다.

 

4.jpg

 

73년 동립산업의 부도로 작약도는 경매시장에 나왔다. 72700(22천여 평) 크기의 이 섬은 3년 후 11342만원에 당시 무명이었던 한보개발로 넘어갔다.

 

 

 

한보는 유원지 장사를 잘했다. 여름철 성수기 때 하루에 적게는 5천명 많게는 1만 명이 섬으로 들어왔다. 인천은 물론 수도권에 사는 사람치고 소싯적에 작약도에 한번 놀러가 보지 않은 이가 드물 정도였다.

 

 

 

행락객이 많다보니 탈법을 저질렀다. 수용 인원에 비해 화장실이 감당이 안되었다. 섬에 설치된 10여개 화장실의 인분을 10년 넘게 몰래 바닷물이 가장 높아지는 만조 시각을 이용해 두어 달에 한 번씩 바다로 흘려보냈다. 인천 앞바다가 한때 똥바다 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된 주범이었다.

 

 

 

섬은 원광으로 넘어 왔다. 호텔을 비롯해 카페촌, 전망대, 해상박물관 등을 조성하는 국내 최대의 해상관광단지 개발 계획안을 내놓았지만 한 뼘도 진척되지 못했고 다시 진성토건으로 팔렸다. 얼마 전 굿프렌드로 소유주가 또 바뀌었다.

 

5.jpg

 

이 섬의 가장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보물찾기 소동이다. 56년 군 수사기관은 일제강점기 섬 소유주 스즈키가 패전 후 일본으로 돌아갈 때 3억 환어치의 금괴를 가져갈 수 없게 되자 섬 한구석에 급히 파묻고 갔다는 정보를 입수한다.

 

 

스즈끼는 당시 일본 도쿄에서 결핵을 앓고 있어 언제 숨을 거둘지 모르는 상태였다. 2년 전 금괴를 발굴해 가기위해서 한국으로의 밀항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실패했다고 한다.

 

 

육군 공병 약 20명이 극비리에 동원되었다. 몇 달 동안 철야 작업을 하며 포크레인, 불도저 등 중장비로 이곳저곳을 파헤쳤지만 금덩이는커녕 빈 깡통 몇 개만 나왔다. 섬만 골병들었고 정보 책임자는 심하게 추궁 당했다.

 

 

 

현재 이 섬을 오가는 물길은 끊어졌다. 2013년부터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고 있다. 이 섬은 인천 동구 만석동에 속한다. 동구의 유일한 섬이다. 작약로라는 길 이름도 부여 받았다.

 

 

 

만석부두에서 4.8정도 떨어져 멀리 뛰기라도 하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 1960년대 만석동 아이들은 검은 타이어 튜브를 끼고 거센 물살을 헤치고 섬까지 다녀오곤 했다. 궁핍했던 시절 주민들은 섬에 몰래 들어가 땔감용 나무를 베어오기도 했다. 그만큼 작약도는 만석동과 친숙한 섬이다.

 

 

 

지난해 11월 동구 구의원들과 함께 작약도에 상륙했다. 정기적으로 다니는 배가 없기 때문에 조그만 배를 전세내서 다녀왔다.

 

6.jpg

 

허물어지고 패이고 부러지고, 섬 전체가 성한 곳이 거의 없었다. 배를 대던 선착장은 군데군데 유실되었고 철제 가로등들은 녹슬어 대부분 허리가 꺾인 상태였다. 해안가의 횟집과 방갈로는 무너져 내려 흉가처럼 변했다.

 

 

 

동인천경찰서가 해수욕 시즌 마다 한동안 개설했던 파출소도 꼴이 말이 아니다. 공포 영화 찍기 딱 좋은 풍광이 여기저기서 연출되었다. 몇 사람과 함께 갔길 망정이지 혼자였다면 발걸음 떼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보니, 사람들의 발걸음 끊어져 있는 동안 섬은 오히려 스스로 치유되었다. 바람과 파도가 인공을 자연으로 서서히 돌려 놓았다.

 

7.jpg

 

 

 

들풀과 야생화가 사람들이 만들어 놓았던 시설물을 차지했다. 해안가의 공동 변소가 그 예이다. 변소에 꽃이 피어 꽃변소가 되었다. 볼일 보는 사람들이 사라지자 색다른 볼일이 연출된 것이다.

 

 

 

 

되돌려 놓은 것은 또 있다. 섬 이름이다. 일제의 쇠말뚝 이름 작약도는 이제 제 이름 물치도(勿淄島)가 되었다.

 

 

 

작약도는 조선시대 영종진에 속했다. 강화해협의 거센 조류를 치받는 섬이라고 하여 물치도라고 표기된 기록이 여럿 나온다. 1893년 편찬된 청구도를 비롯하여 대동지지, 대동여지도, 경기고지도첩 등에 그 이름이 나타나 있다.

 

 

 

 

이제 물길이 다시 열릴 것이다. 배가 닿더라도 물치도의 변소꽃은 계속 피었으면 좋겠다라는 인천시립박물관 유동현관장의 바람이다.